2011. 5. 9. 22:16

‘국채’로 둔갑한 125조원 빚더미 LH의 채권 - 경향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062139425&code=990101
 

[사설]‘국채’로 둔갑한 125조원 빚더미 LH의 채권
입력 : 2011-05-06 21:39:42ㅣ수정 : 2011-05-06 21:39:42
 
금융감독원과 전국은행연합회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채권을 오는 6월부터 사실상 ‘무위험 자산’으로 분류키로 했다고 한다. 125조원의 빚을 안고 있는 부실 공기업의 채권을 사실상 국채로 승격시킨 셈이다. LH나 LH 채권의 신용도를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접근이 아닐뿐더러 부실 공기업의 자금조달 편의를 위해 금융감독 규정을 동원한 부적절한 사례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금감원과 은행연은 최근 LH와 협의해 LH 채권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상 위험 가중치를 현행 20%에서 0%로 낮추는 조치를 취했다. 지금까지 은행들은 LH 채권을 매입할 경우 떼일 위험에 대비해 위험 가중치(20%)에 해당하는 만큼 자기자본을 확충해왔는데 위험 가중치가 0%가 됨으로써 자기자본 부담 없이 LH 채권에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금융 공기업 가운데 BIS 기준 위험 가중치가 0%인 곳은 LH가 처음이다.

LH는 정부가 최근 손실보전 대상 LH 사업의 범위를 세종시 사업·혁신도시 사업으로까지 확대했고, 정부의 손실보전을 받는 공기업의 경우 위험 가중치를 0%로 할 수 있도록 한 은행감독업무 시행세칙에 따라 이 같은 결정이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이번 조치는 유동성 부족에 허덕이는 LH의 자금조달이 원활하도록 LH 채권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한 것이다. ‘위험 가중치 0%’에는 LH 채권이 부실화해도 정부가 세금으로 해결해 줄 테니 국채처럼 안심하고 매입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정부의 이런 자세는 기본적으로 ‘공기업 부채는 국가 부채가 아니다’라고 강변해온 것과도 어긋난다. LH 사업 모두를 정부가 손실보전하는 것이 아닌데도 채권을 사실상 무위험 자산으로 취급하도록 한 것 자체도 문제가 있다.

정부가 LH의 자금조달을 원활히 하려면 하루 이자만 100억원에 이르는 LH의 부채부터 줄여 경영을 정상화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부채를 줄여 신용도를 높이려는 근본적인 노력 대신에 채권의 신용도만 갑자기 국채 수준에 맞추는 것은 전형적인 임기응변이다. 정부가 LH 정상화보다 보금자리주택 건설 등의 차질을 우려해 당장의 자금 확보에만 열중하니 꼼수가 나온 것이다. 금감원의 감독 규정을 손 댄 방식도 문제다. 채권 발행 주체인 LH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 관련 규정만 고쳐 ‘초우량 채권’으로 만든 것은 금융질서를 어지럽힐 위험도 있다. 정부 편의를 위해 금융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면 금융후진국을 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