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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원전 100억불, 공기업 주식까지..무슨 일이 있었나?
정부, 수은 BIS비율 맞추려 도로공사 주식 현물출자..예산 투입하더니 공기업까지
조태근 기자 taegun@vop.co.kr ㅣ 입력 2011-05-04 08:51:12 / 수정 2011-05-04 10:27:29

정부가 수출입은행에 도로공사 주식 1조원 어치를 현물출자했다. UAE원전 100억 달러 대출을 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사업 100억 달러 대출을 맡은 한국수출입은행에 한국도로공사 주식 1조원 어치를 출자했다. 정부 당국은 이번 출자가 UAE원전 사업과 관계 없는 것이라고 부인하고 있으나,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원전 사업을 염두에 두고 특정 공기업 주식을 수출입은행에 몰아주려 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한국정책금융공사가 보유한 1조원 규모의 한국도로공사 주식을 수출입은행에 현물 출자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이틀 뒤인 29일 정책금융공사.수출입은행은 이사회를 열어 도로공사 주식 현물출자를 마무리 했다. 도로공사 주식을 출자받은 수은의 대출 여력은 약 10조원이 늘어났다.
수출입은행은 왜 1조원의 자본금 확충이 필요했던 것일까?
출자가 이루어지기 전 수출입은행의 자기자본은 약 6조원. 자기자본비율(BIS)은 11.3%수준이었다. BIS비율은 은행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BIS비율이 낮아지면 은행의 부채가 많다는 의미여서 신용이 떨어지게 된다. 이 경우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 조달금리가 높아진다. 그런데 수은이 UAE 원전 사업에 100억 달러를 대출해 줄 경우 BIS비율이 국제기준인 8%밑으로 떨어지는데, BIS비율을 8% 이상으로 유지하려면 수은은 최소 1조원 가량의 자본금 확충(증자)이 필요했다.
수은과 금융당국, 정책금융공사 측은 UAE원전 사업과 이번 1조원 증자가 UAE원전 대출과는 관계 없는 것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수은 관계자는 "공기업 현물출자 받은 것과 UAE원전 대출은 상관이 없다"며 "출자된 자금은 대출 재원으로 쓰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책금융공사.금융위원회 관계자들도 "출자 목적이 특정 사업 때문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이는 '눈가리고 아웅'인 격인 모양새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은 지난 2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UAE원전 사업 때문에 공기업의 현물출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 행장은 당시 "(UAE원전 사업에)100억달러를 대출하게 되면 BIS비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본금을 대폭 확충할 필요가 있다"며 "재정이 어려우니까 정부 보유 주식 등을 현물출자하는 방안 등을 요청하고 있다"고 분명히 했다.
다른 수은 관계자는 '김 행장의 발언 대로라면 UAE원전 100억 달러 대출 때문에 BIS비율이 줄어드니까 이번 1조원 증자가 이루어진 게 아니냐'는 질문에 "간접적으로 그렇게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공기업 주식일까?
정부는 지난해 내내 UAE원전 사업 100억 달러 대출금 마련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국내 금융기관은 물론 해외금융기관까지 접촉했으나, 국내외 금융기관들은 원전 사업의 특성상 리스크가 크고 저가수주와 역마진 등으로 인해 수익이 보장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참여를 꺼려 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수은이 직접 총대를 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일단 정부는 예산을 투입해 수은의 자본금을 확충하려 했다. 기획재정부와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국회에 1천억원 증자를 요청했는데, 국회 예결위는 지난해 11월 500억원만 배정하고 나머지 500억원에 대해서는 UAE와의 금융지원 계획이 확정된 뒤 국회 동의를 받도록(부대의견) 했으나 지난해 12월 8일 예산 날치기 과정에서 정부는 국회 동의조건을 빼버리기도 했다.
예산을 직접 투입하는 데 따른 번거로움 때문인지, 지난해 말부터는 공기업 주식을 수출입은행에 '몰아주는' 방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책금융공사 관계자는 '공기업 주식의 수출입은행 출자 논의가 언제부터 시작됐느냐'는 질문에 "지난해 말 부터였다"고 말했다.
실제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12월 말 발표한 '2011년 대외경제정책 추진전략'을 보면 "공기업 보유 주식을 수출입은행에 출자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돼 있다. 박영준 지식경제부2차관도 지난해 12월 28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시장도 완전히 손을 놓을 수 없으니 국내 금융도 참여하게 하려면 범정부 차원의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해 특단의 대책을 예고했다.
올해 1월, 정부는 박 차관 주재로 열린 비공개 원전 수출금융 회의에서 한국석유공사와 광물공사.도로공사 등 정부가 보유한 공기업 주식을 현물출자하는 방식으로 수출입은행의 자본금을 확충하는 방안을 검토했고, 2월 들어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이 공개적으로 공기업 현물출자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어 지난달 27일 금융위는 전격적으로 정책금융공사가 보유한 도로공사 지분 중 1조원을 현물 출자키로 결정했다.
이번 현물출자로 정책금융공사가 보유한 도로공사 지분은 기존 8.2%에서 3.9%로 낮아졌으며, 정책금융공사의 수출입은행 지분은 3%에서 18%로 상승했다.
한편 당초 논의됐던 석유공사나 광물자원공사가 아닌 도로공사가 현물출자 대상으로 결정된 데에는 석유공사와 광물자원공사의 상급 부처인 지식경제부가 산하 공기업 주식의 현물출자에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공사는 국토해양부가 관할 부처다.
이밖에도 정부가 법률상 지분 이동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에 도로공사 주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정책금융공사 관계자는 "다른 공기업의 경우 해당 공기업법에 타 기관에 출자가 금지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도로공사 지분이 거의 유일하게 출자가 가능한 주식"이라고 말했다.
조태근 기자 taegun@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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