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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교우회인지 ‘MB’ 교우회인지…
기사입력시간 [189호] 2011.04.29 17:27:03 주진우 기자 | ace@sisain.co.kr
이명박 대통령 탄생에 가장 앞장선 사조직으로 꼽히는 고려대 교우회가 시끄럽다.
구속된 천신일 전 회장에 이어 새 회장 후보로 선출된 구천서씨도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선거 과정도 소송에 휘말렸다.
“여러분은 최고의 협력자이자 지지자이다. 앞으로 5년도 저를 지켜주고 사랑해주기 바란다.”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MB) 당선자가 고려대 교우회 신년 교례회에서 한 말이다. 이 대통령 당선자는 측근의 만류를 뿌리치고 교우회에 참석했다. 모교를 챙긴다는 비난을 감수할 만큼 고려대 출신 ‘개국공신’들의 공은 컸다.
100년 넘는 역사와 28만여 동문을 보유한 고려대 교우회는 ‘고려대 마피아’라고 불릴 정도로 끈끈한 유대를 자랑한다. 호남향우회·해병대전우회와 더불어 ‘3대 사조직’으로 꼽히기도 한다. 고려대 교우회가 더욱 주목을 받은 것은 2007년 대선 때부터이다. 대통령과 절친한 동기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68)은 2007년 4월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를 모토로 김중권 전 민주당 대표를 제치고 교우회장에 오른다. 고려대 한 관계자는 “2006년 10월 천 회장은 110억원 상당의 주식을 고려대·연세대 등에 기부했다. 기부 이전까지 천 회장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 동기인 61학번들을 중심으로 한 교우회는 대선에 총대를 메고 나선다. 교우회원들은 이때부터 교우회가 정치 세력화·사조직화되었다고 지적한다. 교우회보는 이명박 후보의 선전지라는 비난을 받았다. 여러 차례 선관위의 경고를 받았고, 정 아무개 교우회보 편집장은 이명박 후보에게 유리한 글을 게재·발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고려대 교우회 신년 행사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정부 들어서 고려대 인맥은 이명박 정부의 ‘인재 은행’이 되었다(<시사IN> 제187호 참조). 특히 대통령의 동기인 고려대 61학번은 ‘역사상 가장 잘나가는’ 학번으로 통했다. 정권의 핵심 중 핵심이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감독기관인 금감위원장보다 힘이 세다는 평을 받았다. 외환은행 인수는 그의 뚝심을 보여주었다. 장경작 현대아산 사장(전 롯데그룹 총괄사장)은 제2 롯데월드 건설을 성사시켰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제2 롯데월드 건축을 허용했지만,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고려대 교우회 해외 네트워크 방대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안보상 이유로 반대 의견을 밝힌 공군참모총장까지 교체해가며 제2 롯데월드 건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헌납한 재산을 관리하는 청계재단의 이사장을 맡은 송정호 전 법무부 장관. 그는 인사철마다 국가정보원장·국무총리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고려대 61학번 모임인 ‘61회’ 회장을 맡은 김영우 국제정책연구원 정책위원(부일장학회 회장)은 숨겨진 실세. 롯데호텔에 있는 그의 개인 사무실은 실세들의 사랑방이다.
천 회장은 교우회에서 해외 지부를 구축하는 데 공을 들였다. 교우회는 2009년 미주 연합을 결성한 데 이어, 유럽 연합과 아시아·태평양 지부연합체까지 출범시켰다. 당시 해외 네트워크 사업을 맡았던 구천서 한반도미래재단 이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고려대 교우회는 전 세계에 방대한 네트워크를 가진 조직이다. 이기수 총장은 취임 이후 해외에 있는 교우회 네트워크를 효율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2009년 2월 공직선거법이 바뀌어 재외 동포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되면서 이들 해외 지부는 더 주목받는다.

천신일 전 교우회장(왼쪽)과 새 교우회장 최종 후보로 선출된 구천서씨.
“고려대 교우회에는 고려대 정신이 없다”
지난해 12월 세무조사 로비 등을 대가로 45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천신일 교우회장이 구속되었다. 그러자 송정호 교우회장 직무대행이 교우회장 입후보자 등록 공고를 냈다. 그러자 59학번인 김중권 전 DJ 정부 청와대비서실장(72·법학)과 70학번인 구천서 한반도미래재단 이사장(61·경제)이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지난 2월 ‘제30대 교우회장 후보자 추천위원회’ 구성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었다. 이후 MB와 가까운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66·법학, 65학번)이 교우회장 선거에 새로 뛰어들었다. 총장보다 높은 교우회장이라는 말이 나왔다. 한 교우회 관계자는 “인지도가 높은 김 후보가 한 발짝 앞서나가자 교우회원 사이에 ‘김중권이 당선되면 MB에게 누가 된다’는 말이 퍼져나갔다”라고 말했다. 한 65학번 인사는 “(이 전 총장이 선거에 뛰어든 데는) 천신일 회장 등 61학번의 의중이 작용했다. 그러나 이 전 총장은 이승만기념사업회장을 지낸 인물로, 4·19를 촉발한 고려대 정신과 위배된다는 비난도 일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중권 후보는 “정치세력화한 교우회를 바로잡아야 한다”라면서, 고려대 교우회와 이기수 전 총장을 상대로 회장단회의 결의 등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했다(아래 인터뷰 참조). 김중권 후보는 “송정호 교우회장 직무대행이 나의 당선을 막기 위해 추천위원들에게 투표에 참가하지 말 것을 독려했다”라고 주장했다. 그 바람에 추천위원회가 무산되었으며, 그 뒤 회장단이 이기수 전 총장을 추가 입후보 등록시킨 것은 규칙에 어긋나는 불공정 선거 행위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송정호 교우회장 직무대행은 “김중권 후보는 사퇴하고 이기수 후보도 떨어져 소송의 실익이 없을 것 같다. 교우회가 정치적이라는 것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지난 4월14일 다시 열린 교우회장 후보자 추천위원회에서 구 이사장은 최종 35표를 얻어, 32표를 얻은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을 따돌렸다(김중권 후보는 선거에 불참했다). 이에 따라 구 이사장은 교우회 정기총회에서 인준을 거치면 제30대 교우회장에 취임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4월18일 회삿돈 100억여 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 후보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구 후보는 2006년 비상장 회사를 우회 상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소유한 주식의 가치를 부풀려 회사에 수백억원대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2003년 구 후보는 태권도협회장 선거 과정에 조직폭력배를 동원한 혐의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4월20일 김상환 서울중앙지법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라며 구 후보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그동안 구 후보 측은 “모든 것이 상대 후보의 음해에서 비롯된 수사다”라고 주장해왔다.
고려대 교우회는 4월28일 정기총회 인준을 거쳐 구천서 후보가 회장직에 오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송정호 교우회장 직무대행은 “개인의 법적인 문제는 회원들이 알아서 판단할 것이다. 참석자 가운데 과반수를 득표하면 회장으로 인준되는 절차가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2009년 4월 천신일 회장은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지만, 교우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한 고려대 재학생은 “고려대 교우회에는 자유·정의·진리라는 고려대 정신이 그 어디에도 없다. 교우 사회가 크게 병들어 있다”라고 말했다. 한 고려대 졸업생은 “이명박 동문이 대통령이 되면서 친했던 몇 사람은 출세를 했지만 대다수의 고려대인과 고려대의 명성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끈끈했던 연대감도 무뎌지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