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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원전 두고 말 바꾼 엄기영, 근덕면 주민들에 '문전박대'
문 닫힌 원전 유치위원회는 '유명무실'..찬성 주민들도 안전성 우려 높아
박상희 기자 psh@vop.co.kr ㅣ 입력 2011-04-20 09:28:13 / 수정 2011-04-20 14:39:06
4.27 강원지사 재보선을 앞둔 삼척 지역은 다른 지역과는 조금 달랐다. '출신지', '인물론'을 주제로 표심이 움직이기보다 지역 최대 현안인 원자력발전소 추진 여부가 차기 강원지사를 결정짓는 요인이 된 것이다.
그 동안 삼척은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은 지역으로 꼽히긴 했지만 6.2 지방선거 때 이광재 지사의 선출로 그 아성도 무너졌다. 이번 재보선을 앞둔 삼척 분위기 역시 한나라당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삼척시민들 대다수는 “정치인은 여야 상관없이 똑같다”는 일관된 반응을 나타내면서도 원자력발전소 유치에서는 양분됐다.

삼척시 근덕면 내 걸린 4.27 강원지사 재보선 공보물 ⓒ민중의소리
선거를 일주일 앞둔 19일, 삼척에서 만난 시민들도 원전에 대한 의견은 양분되어 있었다.
삼척 시내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안기만 씨는 “삼척시 경제를 봐서는 (원전을) 유치해야 한다. 일본에서 지진이 나서 지금 찬반이 팽팽한 것이지, 예전에는 찬성이 많았다.”면서 “(원전 유치에) 찬성했던 사람들이 (잠깐) 주저앉았을 뿐”이라고 찬성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중앙시장에서 만난 최희면 씨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매일 방사능비나 눈이 오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우리라고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 있느냐”며 원전 유치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지역 현안에 밝은 한 관계자는 “차기 강원도지사는 삼척시장이 밀어붙이는 원전 유치에 동조할 것인지, 폐기할 것인지로 결정된다.”고 했다.
근덕면 주민들은 대다수 원전 반대.. 굳게 닫힌 원전유치위원회
삼척시가 원전을 짓겠다고 한 근덕면 덕산리, 부남리는 다양한 현수막으로 울긋불긋했다. “원자력단지 유치하여 지역발전 앞당기자”, “원자력산업 반드시 유치하자” 같은 원전 찬성 현수막과 함께 “이룰수 없는 핵발전소 허황된 망상을 규탄한다”, “청정해역 관광지에 원전건설 웬 말이냐”같은 반대 현수막이 경쟁하듯 나부끼고 있었다. 삼척시는 이 일대에 원자력발전소는 물론 스마트 원자로, 제2원자력연구원을 지속적으로 유치해 원자력에너지 클러스터로 조성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작 이곳 주민들은 삼척시가 ‘멋대로’ 원전 추진에 혈안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삼척시가 원전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삼척MBC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원전유치를 반대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60%대로 나타났다. 반대 이유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따른 방사능 유출 등 안전 문제가 컸고, 농어업 피해 등도 꼽혔다. 주민들의 불안은 행동으로도 나타났다. 2005년 방폐장 반대 궐기대회 이후 보기 힘들었던 대규모 원전 반대 집회가 열린 것이다.

삼척 시내에 내걸린 핵박전소 유치 백지화 촉구 현수막들 ⓒ민중의소리
근덕면에 위치한 원자력 산업유치위원회의 사무실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전화통화 역시 어려웠다. 인근을 지나던 한 주민은 “원전 유치에 찬성하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고 유치위 사무실도 제대로 운영이 되고 있긴 한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원전을 지지한다고 쓰인 현수막 역시,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주장도 있다.

근덕면 내 원자력 산업유치위원회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민중의소리
근덕면번영회의 한 관계자는 “무슨 부녀회, 무슨 산업 등의 이름으로 원전 찬성 현수막이 걸려 있지만 실제 있지도 않은 유령 단체들이다. 찬성, 지지 현수막도 이곳에 무려 1200개나 걸려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삼척시가 고의적으로 반대 여론을 덮기 위해 찬성 여론을 만든 것이라는 의혹도 나온다. 삼척시 핵발전소유치백지화 투쟁위원회 측 관계자는 “원전에 반대하는 시민이 운영하는 음식점에 손님들이 가지 못하도록 (삼척시장의 측근들이) 압력을 가했다는 말도 있다.”고 했다. ‘삼척시민들 96%가 원전유치에 찬성했다’고 전해졌지만 이 여론조사를 두고 말이 많다. 삼척시가 여론을 ‘조작’했다는 주장이다.
근덕면 일대에서 강원지사 선거는 크게 중요해보이지 않았다. 다만, 원전 예정지인 근덕면 일대에선 김대수 삼척시장에 대한 원성이 높았고, 원전 추진을 찬성했다가 말을 바꾼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가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원전에 찬성했다가 반대로 말을 바꾼 엄기영 강원지사 후보는 근덕면 일대에 들어오지 못했다. 최문순 야권단일후보만 왔다간 것이다.
근덕면번영회 배정규 사무국장은 기자와 만나 “엄기영 후보 측 관계자가 이곳에 오겠다고 연락이 왔었지만, 원전에 근본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엄 후보를 만날 필요가 없다고 해서 (방문을) 거절했다.”고 전했다.
배 사무국장은 “엄 후보는 김대수 시장의 말만 믿고 줄곧 원전에 찬성한다고 하다가, 주민들 분위기가 좋지 않자 반대로 말을 바꿨다. 최근에는 엄 후보가 원전을 잠정 보류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언젠가는 다시 추진하겠다는 말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엄기영 후보 '문전박대' 당하기도.. 원전 찬성 주민들도 안전성 우려 높아
삼척시 중앙시장에서 만난 신 모 씨는 “(시청에서는) 원전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서명을 받았다고 하는데 명단에는 죽은 사람도 있다더라. 내 주변에 있는 반대하는 사람만 합쳐봐도 진짜 찬성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광우 백지화위원회 기획홍보실장은 “삼척시청 등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원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한직으로 발령받는 등 불이익을 받게 될까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원전 예정지인 삼척시 근덕면 일대 걸린 현수막들 ⓒ민중의소리
삼척 주민들은 '포스트 이광재'를 뽑는 이번 선거에 대해선 관심이 없어보였지만, 원전 추진에 반대하고 백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당선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은 분명해보였다.
근덕면사무소 앞에서 만난 한 노인은 "핵발전소 지어서 경제 살리는 것이야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내가 태어난 고향이 더럽혀지는 꼴은 못 보겠다."고 잘라말했다. 또 "핵발전소 더 짓기 전에 그 만큼 전기 절약하면 되는 것 아니냐 . 발전이랍시고 이 지역까지 더럽혀지면 후대에 물려줄 게 대체 뭐가 있느냐"고 전했다.
시내에서 만난 원전 찬성파 주민도 내면 깊숙한 일말의 우려를 털어놓았다.
"정부에서 안전하다고 하지만, 최근 일본을 보면 안전하다는 말을 100% 믿긴 어렵다. 원전 사고로 바닷물이 오염되기라도 한다면 앞으로 청정해역으로 불리긴 어렵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