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의 ‘기무사 휘호’ 아쉬움 세 가지 - 보림재

출처 : http://blog.ohmynews.com/jeongwh59/278144
이 대통령의 ‘기무사 휘호’ 아쉬움 세 가지
2011/04/13 12:07 정운현
앞전에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 얘기를 세 차례 소개한 바 있습니다.
오늘은 이명박 대통령이 쓴 휘호 얘기를 하나 하려고 합니다.
11일자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이 대통령이 휘호를 하나 썼더군요.
국군기무사령부의 부대 창설 60주년을 맞아 써준 것이라고 합니다.
국군통수권자로서 환갑을 맞은 기무사에 휘호를 써준 건 자연스런 일입니다.
<경향신문>에 이 대통령이 쓴 휘호 사진이 소개됐더군요.
남달리 글씨 보는 눈이 있는 건 아니지만, 눈길이 쏠려 관심 갖고 봤습니다.
내용은 세로 두 줄로 쓴 ‘충성일념 조국수호’ 한글체 여덟 글자인데요,
얼핏 단정하고 멋스럽게 쓴 것도 같았으나, 마지막엔 왠지 아쉬움이 남더군요.
그 이유는 세 가지이며,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무사 창설 60주년을 맞아 써준 휘호
첫째, 글씨 배치 등 형식 차원의 문제입니다.
우선 글자 배치를 보면, 본문(충성일념 조국수호)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오른쪽에는 ‘신묘원단’, 그 왼쪽에는 ‘대통령이명박’ 이란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신묘원단’은 올해(신묘년) ‘첫날 아침(元旦)’에 썼다는 뜻이며,
왼쪽 끝에는 필자(이명박 대통령) 이름과 낙관이 찍혀 있습니다.
얼핏 보면 별다른 특이점이 없어 보입니다만, 사실은 아닙니다.
우선 글씨를 쓴 시점를 나타내는 ‘신묘원단’이라는 글귀는 이 위치가 아닙니다.
본문을 마친 후 필자 이름 앞, 즉 ‘대통령이명박’ 위에 쓰는 게 상식입니다.
이 휘호대로라면 편지 첫머리에 편지 쓴 날짜를 먼저 쓴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굳이 이 자리에 쓴다면 ‘축 국군기무사령부 창설 60주년’ 같은 걸 쓰는 게 맞습니다.
(* 하나 더 보탠다면, ‘대통령이명박’은 중간에 띄어쓰기를 했어야 했으며,
또 ‘신묘원단’은 이해를 돋구기 위해 한글보다는 한자가 더 적절했다고 봅니다.)
둘째, 글씨체에 관한 것입니다.
‘신묘원단’과 ‘대통령이명박’은 한글 행서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본문인 ‘충성일념 조국수호’는 한글 예서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하나의 휘호에서 이처럼 글씨체를 달리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글씨체를 달리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부조화’ 때문에 보기에 좋지 않다는 얘깁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7사단, 맹호부대, 청룡부대에 써준 휘호(왼쪽부터)
본문을 예서체로 쓴 것도 썩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서체는 전문 서예가들이 쓰는 멋스러운 글씨체로,
대통령의 휘호와 같은 공적(公的) 용도로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편입니다.
대통령이 전문 서예가가 아닌 이상 글씨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해도
그 나름의 독특한 글씨체를 담는 것이 휘호로서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본문의 내용도 어순이 올바르지 않아 보입니다.
다시 말해 ‘충성일념 조국수호’는 전후가 뒤바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충성일념’과 ‘조국수호’는 서로 대등(對等)한 급의 병렬문장이 아니라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수식하는 주종(主從)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즉 ‘충성일념’을 위한 ‘조국수호’가 아니라 ‘조국수호’를 위한 ‘충성일념’이 맞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이 기무사에 써준 축하 휘호는
형식, 내용 등의 측면에서 모두 문제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이 대통령은 정치인 출신이 아니라 기업인 출신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이런 휘호를 쓸 일이 과거에 그리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청와대 의전담당이나 총무담당 비서진이 이 점을 챙겼어야 했습니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공공기관에 내린 휘호는 ‘영구보관’ 사료이기 때문입니다.
전국에 산재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 보존상태를 보면 실상을 알 수 있습니다.
[참조글 : 박정희 글씨 전국에 1200점... 과연 그 솜씨는?]
이외수 씨가 맞춤법, 띄어쓰기 등을 교정해 자신의 홈피에 올린 이 대통령의 현충원 방명록 글귀
이 대통령은 그간 현충원 등에 남긴 글귀 때문에 여러 번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더러는 맞춤법 때문에, 또 더러는 띄어쓰기가 맞지 않아서였습니다.
대통령의 메모 쪽지 하나도 대통령 기록물로 챙기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는 글귀를 대통령이 알아서 잘 쓰기를 기대해선 곤란합니다.
대통령이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글귀는 사전에 참모들이 잘 챙겨야할 것입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휘호를 쓰기 전에 자본(字本)을 만들어 여러 차례 연습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기무사 창설 60주년을 맞아 이 대통령이 쓴 휘호도 영구보관 될 것입니다.
(*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일 기무사령부 청사 앞에서 휘호석 제막식을 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휘호를 다시 써서 교체하는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번엔 형식도 제대로 갖추고, 또 이 대통령의 개성이 담긴 글씨체로 말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고, 이는 이 대통령에게 누가 될 것입니다.
청와대가 이 점을 진지하게 검토해보기를 고언합니다.
참고로 역대 대통령들의 휘호 한 점씩을 첨부합니다.
이승만 대통령
윤보선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최규하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