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4808
GDP 막차 탄 MB정권이 위험한 까닭은?
[경제포커스9] 경제지표 -체감경기 깊은 심연…민심 흉흉, 새 시대정신 봐야
박형준 ·진보금융네트워크 책임연구원 | media@mediatoday.co.kr 2011.04.12 18:16:21
아무래도 ‘개발의 시대’는 지나간 것 같다. 얼마 전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재진입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지만, 반응은 시큰둥하다. 보수적인 경제신문들조차도 대부분 매우 냉소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파이낸셜뉴스의 경우에는 “국민소득 2만불, 어쩌라구?”라는 타이틀을 뽑았다(2011.04.01).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몇 년 동안 사람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는데, 지난해 실질 GDP성장률이 6%를 넘어섰고, 무역흑자는 사상최대치를 계속해서 갱신하고 있으며, 코스피 지수는 2007년 호황기의 최고치를 뚫고 2100포인트 이상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이런 경제지표의 호전이 남 얘기처럼 느껴진다. 여러 경제지표들이 가리키고 있는 경제상황과 사람들이 체감하는 경기 사이에 깊은 심연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둘 사이의 차이가 확대되고 있는 원인을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간단히 표현하자면, GDP의 시대가 가고, 21세기 한국사회의 새로운 ‘시대정신’이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0일 기획재정부에서 열린 81차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물가문제가 가장 중요한 국정의 이슈"라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
이에 대한 종합적인 설명은 이어질 일련의 칼럼에서 제시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GDP성장이 더 이상 정권재창출에 보탬이 될 수 없는 ‘물질적 조건’에 초점을 맞춰 보자. 다시 말해, 이른바 747공약(7%성장, 국민소득 4만불, 7대 강국도약)을 내세워 집권에 성공한 MB정부는 GDP중심 성장전략으로 집권에 성공한 마지막 정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 때는 시대정신으로 유효했던 GDP 성장전략
시대정신이라 하면 관념론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시대정신은 사회성원들이 자신들의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집단적 정서의 형태로 파악하고 표현한 것으로서, 그 사회가 처한 물질적 조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근원적 문제는 시대정신이 급속히 바뀌고 있는데, 계속해서 과거 시대정신의 지표인 GDP에 집착하고 있다는 데 있다. GDP는 산업인프라가 미비하고 사회적 관계가 주로 비시장적 관계에 머물러 있을 때 의미가 있는 지표다. 그런 시기에는 GDP의 성장이 사회적 발전과 복지의 증가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궤를 같이 하는 경향이 있어, GDP성장에 맞춰 사회를 주도적으로 조직하려는 세력이 종종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박정희 정권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앞으로는 그런 정치세력이 나오기 힘들다고 판단된다. 오히려 GDP 관련지표가 좋게 나오면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상황과의 괴리가 커져, 정권으로부터의 민심이반이 더 심화될 수 있다.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이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 필자는 떡고물 효과라고 부름)를 통해 사회통합의 효과를 낳는 단계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났다.
아래의 그래프를 보면 이러한 사실이 잘 드러난다. 실선은 노동소득분배율을 나타낸 것이고, 점선은 법인(기업)의 소득분배율을 나타낸 것이다. 노동소득분배율은 피고용자보수/(피고용자보수 + 기업및 재산소득)으로, 법인소득분배율은 기업부문의 처분가능소득을 국민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누어 계산하였다. 이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1997년의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구조적인 변화를 겪었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기 전에는 법인소득의 상대적 비중 증가가 노동소득의 상대적 비중 증가와 함께 진행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노동소득분배율은 정체되거나 다소 하락한 반면, 기업의 소득분배율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2010년의 기업의 소득분배율은 20년 전에 비해 무려 220% 수준으로 커졌지만, 노동소득분배율은 6% 증가하는데 그쳤다. GDP가 증가하고 그에 따라 지표상으로 국민소득이 높아져 봤자, 그 혜택은 전부 기업들에게만 돌아가고, 대부분의 노동자·서민들의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 전략을 채택한 까닭
GDP성장률을 통치전략 중심에 놓는 것은 사회지배층이 전체 이윤의 파이를 키우는 가운데 자신들의 상대적 몫을 늘리고, 일부를 다른 사회계층에 떼어줄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지금 경제발전과 관련해 세계적인 주목받고 있는 BRICs 국가들의 경우에는 아직 이런 여력이 많이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적으로 매우 성숙해 있는 한국의 경우에는 이런 방식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계에 부딪혔고, 그 이후로는 다른 전략이 모색되었다.
아래 그림은 자본주의적인 성숙도와 산업자본 팽창과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자본주의적 성숙도는 도시화 비율을, 산업자본 팽창은 GDP대비 고정자본형성의 비율을 대리지표로 삼았다. 그래프를 보면, 중국의 경우 도시화가 현재 약 50% 정도 이루어졌고, 산업자본의 팽창속도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아직 산업팽창의 여력은 많지만 그 속도는 차츰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일본, 미국, 그리고 상위 OECD 국가들의 경우에는 일찍이 산업발전의 국면을 거쳤기 때문에, 도시화는 약 80%, GDP대비 고정자본형성은 20% 미만 수준에 걸쳐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도시화는 이미 선진국 수준을 넘어섰지만, 아직 GDP대비 고정자본형성은 OECD국가들보다 다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기업들이 국내투자에 머뭇거리고, 해외생산기지 건설에 주력하고 있어 이 비율도 조만간 ‘선진국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보면,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한 이래 한국사회가 밟아온 경로의 근저에 무엇이 깔려있었는지 알 수 있다. 아직 자본주의적인 산업관계로 전환되지 않은 사회부문을 자본주의적으로 재편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증가시키는 체제가 한계에 달하자, 사회지배층은 사회적 양극화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부를 상대적으로 상향 재분배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여기에는 노동시장유연화라는 이름으로 펼쳐진 광범위한 비정규직 양산, 끝도 없이 이어지는 하청다단계, 종부세 무력화와 소득세·법인세 인하 등의 부자감세, 공기업 선진화란 미명하에 펼쳐진 흑자공기업 민영화, 30년간의 이윤을 보장받는 민자개발 등등 무수히 많은 ‘비지니스 프렌들리’ 전략이 포함되어 있다. 기업이 잘되어야 국민이 잘 산다고 위정자들은 목청 높여 이야기해 왔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국가적 지원을 받고 세계 최고의 순이익을 내는 IT기업으로 성장해도, 그 결실은 주주들과 임원들에게 대부분 돌아갈 뿐이다(물론, 일부는 삼성맨들에게 돌아간다).
한국사회는 이제 GDP의 성장을 중심에 놓고 국정을 운영해서는 안 되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면 사회적 불안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올 들어 2011년 총선과 대선이 가시권 아래 들어오면서, 복지국가란 화두가 많이 회자되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정통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정책강령을 내세워 왔던 쪽뿐만 아니라, 민주당과 더불어 한나라당의 박근혜 진영까지 거의 모든 정치세력들이 복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쯤 되면, 복지국가가 한국사회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정치집단들의 진정성이나 복지체제의 현실화 가능성은 잠시 묻어두고, 이는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생산’과 ‘일’만 보고 달리던 시대 이제는 ‘자기파괴적’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생산’과 ‘일’에 지나치게 몰두해 있었다. 이제는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혹시 우리가 생산하고 있는 것이 일본의 원전과 같이 자기파괴적인 것은 아닌가, 개발이란 미명 아래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생명줄 같은 역할을 하는 자연을 마구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질문을 던져볼 때이다. 지금까지 우리사회가 GDP를 나침반처럼 여기고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만 보고 달려 왔다면, 이제는 우리가 인간적으로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고, 그를 향해 가려면 어떤 이정표를 따라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에서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앞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CBS노컷뉴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에서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앞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그것이 복지국가가 될 것인지에 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아직도 ‘선성장 후분배’를 외치며 복지정책 확대에 애써 반대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한가지 참조할만한 지표만 이야기 하고 글을 맺자.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북유럽 3국(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모두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은 것은 1988년에 와서이다. 게다가 물가수준을 감안한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는 1997년이 돼서야 2만 달러를 넘었다. 구매력평가 기준으로라면 한국도 2003년에 이미 2만 달러를 넘어섰다.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정치세력들이 그것을 실현시킬 준비를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장이 아직 덜 됐거나 소득수준이 아직 높지 않아 시기상조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