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당수에 몸을 던진 한 공직자, MB정부엔 왜 없나 - 양정철닷컴

출처 : http://yangjungchul.com/144
인당수에 몸을 던진 한 공직자, MB정부엔 왜 없나
2011/04/12 05:33 양정철닷컴
창작발레 ‘심청’에서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장면(사진:뉴시스)
여기, 불량식품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을 먹고 말고는 오로지 소비자 혼자의 선택일까요. 물론 외견상은 그렇습니다. 시장경제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식품당국은 불량식품의 생산과 유통과 판매를 철저히 규제하고 단속함으로써 소비자의 선택에 개입합니다. 소비자 각자의 선택에 맡겨야 할 문제인데도 개입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불량식품 안에 숨어 있는 유해물질의 복잡한 성분과학을 소비자 개개인은 일일이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단 먹을거리뿐이 아닙니다. 마시고 입고 즐기기 위해 이뤄지는 거의 모든 소비활동의 최종 선택은 소비자에게 있지만, 당국은 소비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개입합니다. 소비자가 낭패 보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세금을 낸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 작은 소비 하나하나에까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가, 한 가정 전체를 망하게 할 수도 있고 흥하게 할 수도 있는 집 문제에 대해선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집을 사냐 전세냐 월세냐의 선택, 혹은 어느 지역을 고르느냐, 아니면 빚을 내서 살 것이냐 여부엔 개입해 도울 방법이 없겠지요.
하지만 정부는 보다 큰 틀에서, 정책을 통해 효과를 유도합니다. 예측과 정보를 줘서 현명한 선택을 돕기도 합니다. 주택정책의 기본 범위에 금융권이 포함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갚을 형편도 안 되면서 은행에서 돈 빌리는 행위는 도박입니다. 그런 경제행위는 정책의 도움으로 제어해 주는 것이 맞습니다. 도박이란 것이 엄밀히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희에 불과한데도 당국이 철저히 제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겠죠.
은행에서 돈 빌리는 사람들은 대개, 없는 사람들입니다. 없는 사람들은 평생 집 한 칸 마련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어느 시점에 일생일대 결단을 하는 법입니다. 형편을 넘어선 욕심을 내기도 합니다. 바로 금융권 대출입니다. 그런데 빚내서 집을 살 형편이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의 기준을 금융권의 도덕에 맡길 순 없습니다. 탐욕스런 금융자본에게 양심이란 없으니까요. 그래서 정부는 DTI라는 것을 활용합니다.
쉽게 설명 드리면, 돈 빌리는 사람의 소득을 놓고 얼마나 제대로 갚을 수 있는지 판단해서, 빌려주는 돈의 한도를 정하는 겁니다. 참여정부 때 마련한 제도입니다. 갚을 형편도 안 되는데 무리하게 빚을 내 집 샀다가 한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일 없도록 하기 위해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돈 빌리는 사람들을 금융기관의 ‘약탈적 대출’로부터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그 역할을 잘 하고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DTI 규제를 오히려 풀었습니다. 당연히 가계빚은 급증을 했습니다. 이유는 뭘까요. 건설업계와 부동산시장을 부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가계빚을 안 생기도록 유도하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정부가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가계빚을 늘어나게 해 건설업계와 부동산시장을 살리려 한다…. 이해가 가십니까.
가계빚이 너무 늘어나니까 DTI 규제를 다시 묶는 척 한 것이 이명박 정부의 ‘3·22 부동산 대책’입니다. MB정부는 여기서 또 장난을 칩니다. 겉으론 규제를 강화한 것 같지만 사실은 대출 상환 방식만 바꾸면 대출한도를 오히려 늘려준 겁니다. 국민들이 당할 낭패엔 관심도 없다는 반증입니다. 말로만 서민을 얘기하지 실상은 건설업계, 부동산업계, 투기자 등 기득권층을 위한 부동산 정책을 계속 견지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거품을 빼야 할 정부가 여전히 부동산 거품을 더욱 부풀어 오르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가계빚 총액은 거의 800조 원에 달합니다. 가뜩이나 고물가와 소득양극화 때문에 어려워지고 있는 서민들의 가계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가계대출 부실화는 금리상승기를 앞두고 경기 전반에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는 서민과 저소득층의 대출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 정책 당국자들은 공공연히 “빚내서 집사도 괜찮다”는 식으로 낙관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참으로 무책임한 정부입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참여정부 시절의 한 고위 공직자를 떠올립니다. 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입니다. <매일경제>와 <한국일보>에서 경제부 기자를 오래 했고 경제부장과 경제담당 논설위원까지 지내다 홍보수석을 맡은 경제 및 홍보통입니다.
그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있던 2006년은 참여정부가 부동산투기 광풍과 전쟁을 치를 때였습니다. 세상은 온통 부동산이 화제였습니다. 신문 방송은 연일 부동산 뉴스로 도배됐습니다. 주말마다 전국의 복덕방이 붐볐습니다. 아파트분양 사무소에는 청약자들로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집 없는 서민들은 다급해서 빚을 내 집 장만에 나섰습니다. 정부가 고강도 대책마련에 착수했다는 소식도 전혀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경제 전문기자 출신의 그는 △정부가 강력한 투기억제조치인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본격시행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고 △선진국 부동산시장이 이미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는데, 한국만 투기광풍이 부는 것은 시장기능에 이상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광풍은 투기세력의 농간일 가능성이 크고 △큰손들은 거의 빠져 나왔으며 △꼭짓점에 온 시점에서 자칫 서민들만 큰손의 밥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했습니다.
선의의 피해자를 한사람이라도 줄이고 싶은데 정부대책의 내용을 미리 공개할 수는 없으니 큰 줄거리만이라도 알려, 없는 사람이 애꿎은 낭패 보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본인 이름으로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습니다. ‘정부…양질의 값싼 주택, 대량 공급’ ‘집 사려거든 기다리세요…8.31 흔들림 없이 집행’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대부분 매체가 ‘지금 집 사면 낭패’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문제는 언론들이 ‘노무현 흔들기’에 미쳐 있던 시절이어서 그가 갑자기 타깃이 됐습니다. 그가 홍보수석이 되기 전 강남에 아파트 분양받은 게 유일한 시비가 됐습니다. 부정한 돈으로 마련한 아파트도 아니고 편법으로 분양받은 집도 아니었는데, 온갖 허위 왜곡보도가 춤을 췄습니다. 마치 그가 물러나면 부동산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 같은 미친 분위기였습니다. 언론은 사냥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실상을 모르고 정치권, 심지어 여당까지 가세해 그를 날리라고 나섰습니다. 졸지에 희생양이 된 것입니다. 대통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그는 홀연히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가 물러나고, 부동산 시장은 그가 국민들에게 미리 간곡하게 설명한 그대로 갔습니다. 정부의 대책은 강력했습니다. 그 때 시행된 게 DTI 규제였습니다. 미친 듯이 불던 바람이 미친 듯이 수그러들었습니다. 이젠 부동산침체 분위기가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조선일보>엔 그의 ‘집 사면 낭패’ 발언이 나왔던 2006년 11월 꼭지점에서 상투를 잡은 사람들이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강남 중년주부의 사례를 실감나게 전했습니다. ‘집 사면 낭패’ 얘기를 사후에 확인해 준 기사는 그 후에도 났습니다.
“지금 집을 사면 쪽박을 찬다는 노무현 정부 경고(?)가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시 청와대 주장은 일부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되레 집값을 올리는 발언” 등의 비난을 사는 등 역풍을 불렀다. 그해 11월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은 ‘지금 집을 사면 낭패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사퇴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값 폭락이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지금 집을 사면 쪽박을 찬다’는 노무현 정부의 경고는 ‘족집게 예언’이 된 셈이다.” (한국일보)
참여정부가 부동산정책과 집값 잡기에 최선을 다했지만, 잘했다고 하긴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현 정부처럼 해야 할 일을 안 하거나 반서민적인 정책기조를 견지하진 않았습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가 만든 서민보호 장치조차 쓰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공직자도 ‘서민들이 낭패 볼 수 있다’는 경고를 용기 있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부추기는 발언을 하는 공직자만 즐비합니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공직자로서 해야 일을 하고 해야 할 말을 한 후, 주저 없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이백만을 지금이라도 도로 끌어올려야 할 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