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8. 17:34

리즈 테일러는 되고 김미화는 안돼? - 한겨레




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71508.html
 

리즈 테일러는 되고 김미화는 안돼?

[미디어 전망대]  기사등록 : 2011-04-05 오후 07:41:05  기사수정 : 2011-04-06 오전 11:00:50

얼마 전 ‘세기의 미인’이라 불리며 사랑을 받았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하늘나라로 갔다. 숱한 화제를 뿌린 그녀이지만 ‘에이즈 퇴치 운동’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브 몽탕이 멋지게 기억되는 것은 ‘세시봉’(C’est Si Bon)을 비롯한 감미로운 샹송을 부르고 훌륭한 연기를 통해 우리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화예술 활동에 그치지 않고 반전운동, 인권운동, 핵반대운동에도 참여하면서 인류의 삶을 좀더 개선하려고 온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여배우 제인 폰다는 널리 알려진 반전 평화 운동가이며 많은 세계적 스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참여한다. 이들은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전쟁과 침략에 정면으로 맞서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예인들의 사회 참여가 늘고 있다. 기부 천사라고 불리는 연예인들도 있다. 금연이나 마약 퇴치, 에이즈 예방, 헌혈 등을 위한 홍보에도 기꺼이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활동들은 높이 평가받고 존중받을 만한 선행이다. 이와는 다른 방식의 사회 참여도 있고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한다. 자신이 믿는 가치와 신념에 따라 사회적 문제에 대해 견해를 밝히는 참여이다. 문화적,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권력자인 연예인들은 언제나 주목의 대상이다. 그래서 그들의 사회적 발언이나 참여를 껄끄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여전히 팽배하다. 많이 누그러지긴 했지만 연예인들을 얕잡아 보는 분위기도 이러한 발언을 망설이게 만든다. 권력에 아부하고 주변에 기생하는 연예인들은 많지만 권력을 비판하며 사회적 감시자 구실을 하는 연예인은 드물다. 권력의 검열과 압제가 곳곳에서 번득이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모순과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체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믿는다. 괜히 끼어들었다간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고 자칫하면 연예 활동에 큰 지장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일 게다. 권력의 눈 밖에 나면 방송 출연의 길이 막힐 수도 있다는 불안 때문에 부조리한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방송인에게서 마이크를 빼앗으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그러한 정황이 감지된다. 문화방송 라디오에서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김미화씨를 교체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방송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으면 진행자를 교체할 수 있다. 프로그램을 개편할 수도 있다. 어떤 교체 핑계를 갖다 붙이든 그것이 방송인들의 사회적 발언을 봉쇄하거나 비판적 방송인을 솎아내기 위한 것이라면 이는 방송에 대한 유린이다.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편성하는 권한은 정권의 심부름꾼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권한은 방송사에 있는 구성원들만의 것도 아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건강한 문화와 오락을 제공하도록 국민들이 방송사에 맡긴 것이다. 방송인은 그의 정치적 성향이나 사회적 참여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그가 국민들이 위탁한 방송권을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느냐에 따라 출연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김미화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국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충실한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교체한다면 국민들의 방송주권에 대한 도전이고 약탈이다. 그러한 풍문만으로도 방송인들이 몸을 사리게 만들고 자기 검열하도록 한다.

모든 방송인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서 발언하고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드러낼 수 있는 권리는 어떠한 이유로도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을 앞세워 방송인들에게 맡겨진 국민들의 방송권을 빼앗으려는 시도는 반드시 큰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