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5. 04:06

신공항백지화보다 여권의 추태가 끔찍하군요 - 양정철닷컴




출처 : http://yangjungchul.com/141
 


신공항백지화보다 여권의 추태가 끔찍하군요
2011/04/04 06:23
 

이대통령의 신공항기자회견. 어디갔다가 이제 오셨습니까?(사진:뉴시스)
 
동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됐습니다. 후폭풍이 거셉니다. 논란이 오래 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공항 백지화가 아닌 것 같습니다. 여권 인사들의 행보와 처신이 참으로 비겁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게 더 심각해 보입니다. 추태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 모습에서 우리의 장래가 보이지 않고, 어둡고 끔찍하기만 하다는 것이 정작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한국정치의 수준, 한국사회 공론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각각의 처신이 뭐가 문제인지 하나씩 따져보고자 합니다.

1. 이명박 대통령의 비겁

돈이 기하학적으로 들어가는 대형 국책사업은 신중해야 합니다.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백지화 하는 게 불가피합니다. 단기간의 인기나 여론을 쫒을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국가를 경영하면 큰일 날 겁니다. 개인적으론, 이 대통령과 정부의 결정을 이해합니다. 대통령이 때론 고독한 결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그게 대통령이라는 자리입니다.

백지화라는 결론에 대해선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공표의 방식과 태도는 비겁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이명박 대통령의 무리한 공약에서 출발했습니다. 처음부터 선심성 공약이었습니다. 대국민 회견의 핵심은 거기에 맞춰졌어야 했습니다. “선거과정에서 지지를 얻으려는 마음이 지나쳤던 나머지 충분히 따져보지 않고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결과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공약을 했습니다. 저의 불찰이고 저의 부족함입니다. 국민들과 지역민들에게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이런 메시지가 담겼어야 진정성이 전달됐을 것입니다.

이 대통령 스스로 이번 회견에서 한 말이 있습니다. “선거 때 공약한 것들을 다 그대로 한다면 아마 국가 재정이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핵심입니다. 선심성 공약은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와서 그걸 깨닫고 지키지 못하게 된 공약이 있으면 솔직하게 사과를 해야지, 에둘러서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혹은 “국익에 반할 때에는 계획을 변경하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표현은 당당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약속 안 지킨 것보다 더 큰 잘못은, 정부가 백지화 결정을 고의로 질질 끌면서 사태를 악화시킨 것입니다. 정부는 이 공약이 타당성 없는 계획임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습니다. 참여정부 인사들도 알던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6·2 지방선거 등 정치일정을 고려해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그 바람에 지역 간 기대와 경쟁과 갈등은 더 커졌고, 결국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에 대한 사과는 없었습니다.

고뇌에 찬 대통령의 최종 결단만 얘기했지, 그 동안 청와대가 꽁무니를 빼고 뒷짐 지던 모습에 대해선 아무 반성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문책인사는 없다고 말합니다. 공약 안 지킨 건 대통령 잘못이지만 사태를 악화시킨 데 대해선 관련자의 책임을 묻는 게 맞습니다. 혼자 끌어 안는다고 전혀 멋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설득력이 없습니다.

과정도 올바르지 않습니다. 백지화 발표 전에 청와대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 사전 양해를 구했다고 했습니다. 순서가 틀렸습니다. 양해를 구하려면 해당지역 단체장들에게면 모르겠습니다. 전직 당 대표 단 한 사람에게만 사전 양해를 구하는 것은, 당내 평지풍파를 막아보려는 계파적 고려 외엔 없다는 얘기입니다. 벌써 집권 4년차에 접어든 대통령과 청와대입니다. 역사 앞에 당당해 지는 모습을 배울 때가 됐습니다. 왜 이리 비겁한 행보만 보이는지 답답합니다.

2. 박근혜 전 대표의 무책임

정부가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발표하자 박근혜 전 대표는 “국민과의 약속을 어겨 유감”이라며 “신공항은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계속 추진돼야 한다”며 이 대통령을 비판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을 가장 일반론적인 얘기에 불과합니다. 정작 대안은 하나도 없는 얘기입니다. 정치지도자의 발언으로는 허무합니다. 아주 무책임합니다.

국민과의 약속이니까 지켜야 한다는 건 맞는 말입니다. 관건은 영남권 신공항이 경제성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있다면 밀양이냐 가덕도냐 입니다. 정부 판단과 달리, 계속 추진돼야 한다고 박 전 대표가 주장하려면, 왜 영남권 신공항이 경제성이 있는지, 어느 장소에 어떻게 건설하면 경제성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당당하고 구체적으로 얘기해야 합니다. 그 점을 말하지 않으면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게 이 문제입니다.

지금은 그런 모호한 발언으로 누구한테도 욕 안 먹고 환심을 살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지도자가 되고 나서도 그 정도 원론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다간, 이 대통령보다 더 큰 혼란과 만신창이를 초래할 게 분명합니다. 아주 걱정입니다.

또 박 전 대표는 항상 국민과의 약속을 강조합니다. 이 대통령이 국민과 약속해놓고 약속 안 지켜서 나라를 힘들게 만든 건 신공항뿐이 아닙니다. 동남권신공항은 동남권 주민들의 이해사안입니다. 경제를 획기적으로 살리겠다는 공약에서부터 물가잡기에 이르기까지, 국민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약속도 대통령은 전혀 못 지키고 있습니다. 박 전 대표는 왜 그에 대해선 한 마디도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747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면서, 자신의 텃밭인 동남권신공항 문제도 얘기해야 사리에 맞습니다. 뭔 일이 생겨야 툭 튀어들어, 이 대통령으로부터 반사이익만 챙기는 모습 같아서 대단히 보기 안 좋습니다. 아주 무책임한 모습입니다.

3. 박 전 대표 진영의 기회주의

이 틈을 타, 박근혜 전 대표 진영에서 어이없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지역균형발전론은 노무현 대통령과 가깝다고 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황당한 주장입니다. 박 전 대표는 지금까지 지역균형발전 비전을 내놓은 게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쾌한 일입니다. 노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한 이래 평생을 이 문제에 천착했습니다. 재임 중엔 행정수도 이전부터 시작해서 공기업이전, 기업도시, 지역혁신도시 같은, 나라의 기본 축을 전국으로 바꿔나가는 정책을 수십 가지 제시했고, 임기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노력을 했습니다.

박 전 대표는 동남권 신공항 지지한다는 것 말고 아직 아무 비전도 제시한 게 없습니다. 게다가 신공항을 추진해야 한다는 영남은 자신의 텃밭에 불과합니다. 동남권신공항 건설을 지역균형발전 일환에서 주창하고 있다면, 충청은 물론 낙후된 호남이나 강원의 균형발전을 위한 청사진도 내놓아야 합니다. 하다못해 충청권으로 예정했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대선공약에 대한 입장조차 내놓지 않고 있으면서 노 대통령 업적에 공짜로 밥숟가락 하나 얹으려는 모습은 기회주의의 전형입니다.

4. 한나라당 의원들의 후안무치

이 대통령이 신공항 백지화를 발표한 이후, 영남권 의원들이 취하고 있는 행태는 목불인견 점입가경입니다.

수도권 의원들은 잘했다고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영남권 의원들은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물론 영남권 의원들은 신공한 입지를 두고선 가덕도와 밀양으로 쪼개져 있습니다. 서로 사생결단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놓고선 한나라당 의원들이 하나 같이 반대를 하다가, 그 후속조치인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설치가 시작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소지역별로 서로 유치를 하기 위해 눈에 쌍심지를 켜던 속물적 모습과 하나 다르지 않습니다.

지역갈등 현안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해법은 솔로몬 왕도 내놓기 어렵습니다. 당장 다가올 총선에서 자신들의 득표와 자리보전만 고려한 패싸움입니다. 한나당 의원 수백명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소신발언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계파 구분조차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대통령 핵심으로 꼽히는 의원이 “신공항 문제에 있어선 박 전 대표와 같이 갈 수 밖에 없다”면서 “정치적 압력에 의해 파기된 모든 과정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가려내는 한편 신공항의 타당성에 대해 심사와 평가가 왜곡되고 조작된 부분을 낱낱이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이 정치적 압력 운운하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명박 정권에서 장관까지 지낸 친이계 한 의원도 “이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과하고 국민과 한나라당에 대해 응분의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구 의원들의 기자회견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일부 의원들은 대통령의 탈당, 심지어는 출당을 말합니다. 정치적 도의도, 인간적 신의도 팽개친 행태입니다. 대통령 인기가 떨어지고, 여론이 안 좋아지니 저 혼자 살겠다고 대통령을 등지는 정치인 가운데 잘 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여론이 악화되고, 다음 총선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 같으니,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망신 주며 패대기치는 정치인 가운데 크게 되는 사람을 본 적도 없습니다.

지난번에도 유사 사안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제껏 ‘호의호식’ 누릴 것 다 누리고, 금배지 달고, 양지에서 온갖 덕 보고나서, 신의도 없이 혼자 살겠다고 등지는 것은 ‘먹튀’입니다. 국민에게 선택을 받아 집권여당이 됐으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함께 운명공동체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합니다.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그런 소신을 보이는 의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동남권신공항은 다시 검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 등장한 분들은 어찌 재검토를 해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