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무원 구제역 후유증’ 소 닭 보듯 - 경향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4012304525&code=940702
 


정부 ‘공무원 구제역 후유증’ 소 닭 보듯

주영재 기자 jyeongj@kyunghyang.com  입력 : 2011-04-01 23:04:52ㅣ수정 : 2011-04-01 23:22:42
 
과로사 2명에 “개인적 이유” 공상 인정 안해
‘과잉청구 우려’ 내세워 피해 파악도 소극적


“구제역 비상근무 기간 동안 언니는 검문소에서 방역작업을 했고, 일이 끝나면 다시 보건소로 돌아와 밀린 업무를 봤어요. 폭설에 발이 묶여 귀가를 못하고 보건소 간이침대에서 자기도 했고요.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병이 있다고 공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겁니다.”(고 곽석순씨의 동생 곽미경씨)

경북 고령군청 보건공무원인 곽석순씨(46)는 지난해 12월11일부터 올해 1월3일까지 24일 동안 구제역 비상근무를 했다. 곽씨는 1월4일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쉬다 6일 뇌출혈로 쓰러졌고, 16일 숨을 거뒀다. 유족들은 공무로 인한 사망이라며 공상처리 신청을 했지만 지난 1월26일 공무원연금공단에 의해 부결됐다.

공무원연금공단은 곽씨가 선천성 지병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족들은 “10년간 발병 기록이 없었고 평소 건강이 양호했다”며 구제역으로 인한 과로가 사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활동을 마무리하며 구제역이 사실상 종식됐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방역작업에 동원됐다 숨지거나 다친 공무원들에 대한 보상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지난달 31일까지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 작업과 관련돼 사망 또는 부상으로 공상처리가 신청된 사람은 총 172명. 이 중 사망자 9명 가운데 곽석순씨(46)와 김현범씨(54)에 대한 공상 신청이 부결됐다.
 

 
경북 영천시청 환경과에서 일하던 김현범씨는 지난 2월12일 구제역 종료를 위한 시산제(연초에 지내는 산신제)를 위해 동료들과 함께 산에 오르다 숨졌다. 어떻게든 구제역을 막아보자는 뜻에서 구청 산악회 동료들이 시산제를 계획했던 것이다. 김씨의 동생 석범씨(52)는 “형은 지난해 말부터 연평도 포격 사태, 미군부대 훈련, 구제역 등으로 밤 10시 이전 귀가한 적이 거의 없을 만큼 바쁘게 일했다”며 “설날에도 새벽 4시에 청소노동자를 감독하러 나갔고, 설연휴 마지막날도 다음날 실시될 살처분 작업 준비차 근무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지난달 16일 “등산은 사적 행위였다”며 공상 신청을 부결했다. 김씨의 부인 권경자씨(50)는 “남편이 환청과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일했고, 피로가 쌓여 사고가 난 것”이라며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해고자 복직운동을 하는 왕준연씨는 “공무원연금공단은 (공상 신청이 들어오면) 일단 기각한 뒤 재심이나 소송에서 이기면 주겠다는 식으로 보상에 인색하다”고 주장했다. 전공노의 이충재 부위원장은 “현재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공무원이 너무 많아 규모 파악조차 어렵다”며 “정부는 별다른 대책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월17일 각 지자체에 ‘PTSD가 우려되는 공무원들에게 보건소나 관내 병원에서 건강상담 및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협조하라’는 공문만 내려보냈을 뿐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과잉청구를 걱정해 적극적으로 피해 현황을 파악하지는 않았다”며 “PTSD로 공상 신청이 들어오면 적극 인정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