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28. 14:14

금융감독원이야 ‘금융강도원’이야? - 시사인




출처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53
 

금융감독원이야 ‘금융강도원’이야?  
기사입력시간 [190호] 2011.05.27  09:47:30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금융 시스템을 관리·감독하는 금감원이 오히려 ‘금융 범죄’에 가담해 충격을 주고 있다.
저축은행 관련 비리에 연루된 직원이 12명.
그 같은 비리와 그들의 오만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살펴본다.

 
“금 감원이라고?” 시중은행 입사 23년차 고참 은행원 이 아무개씨. 그는 진저리부터 쳤다. “금감원 직원들이 들이닥치면 은행원은 그냥 죄인 취급이다. 얼마나 콧대가 높고 특권 의식이 강한지, 말도 제대로 못 붙인다. 기분 상하게 하면 바로 회사에 불이익으로 돌아오니까. 그렇다고 엄밀한 감독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은행 내에 인맥만 있으면 잘 봐준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우리 은행에도 금감원 출신 감사가 있는데, 로비시킬 목적이 아니면 왜 데려왔겠는가?”

이런 분노에는 ‘피감자’로서의 피해 의식도 섞여 있으리라. 그러나 김씨의 말투에 금융감독원(금감원) 직원에 대한 불신이 두텁게 깔려 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다. 금감원의 막강한 권력이 ‘금융 시스템의 건전한 유지, 발전’이라는 공적이고 엄정한 명분이 아니라 기관과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해 남용되더라는 경험, 그리고 이로 인한 ‘감독받는 자’의 ‘감독하는 자’에 대한 ‘도덕적 경멸’이 금융계에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 비리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최근의 저축은행 사태는 이씨의 분노에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부산저축은행 영업 정지 방침이 VIP 고객들에게 누설되었다는 뉴스가 나온 뒤, 한 예금자가 은행을 상대로 극렬히 항의하고 있다. ⓒ조우혜

금감원을 경멸하는 은행원

부 산저축은행에 대한 영업정지 방침이 사전에 누출되었다는 사실을 계기로 시작된 검찰 수사에서 금감원 직원들의 유착 비리가 줄줄이 밝혀지고 있다. 금감원 직원들의 ‘범죄 사실’들은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다. 부산저축은행과 보해저축은행(광주)에 대한 수사에서 드러난 것만 봐도 그렇다. “자산 규모가 작은 저축은행 중 극소수에서 드러난 비리 사실만 봐도 어이가 없는데, 훨씬 큰 은행이나 증권사·보험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라고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책위원장은 반문한다.

검찰이 저축은행 유착 비리 사실을 밝혀낸 금감원 전·현직 직원은 5월12일 현재 벌써 12명에 달한다. 비리 규모가 7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불법 대출, 분식회계 등의 범죄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금감원 전·현직 직원들이 이를 방조하거나 적극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저축은행을 검사하던 금감원 부국장은 단지 입을 다문 대가로 2억원을 챙겼다. 수석조사역 직원은 친지의 부탁을 받고 부산저축은행에 전화를 한 통 걸어줬다. 그 결과 220억원이 대출되었다. 검사를 대충 한 대신 그랜저 승용차 구입대금 4000만원을 받은 직원도 있다.

광주의 보해저축은행을 검사한 금감원 직원은 보험설계사인 부인을 위해 이 은행 직원 58명의 ‘단체 계약’을 따냈다. 다른 금감원 직원은 부실기업으로부터 5억원을 받고, 100억원대의 유상증자를 허가해주기도 했다. 이 회사의 유상증자에 돈을 부어넣은 투자자들은 깡통을 차게 될지도 모른다. 금감원 직원들이 건전한 금융 시스템 유지가 아니라 금융 범죄에 적극 가담해온 것이다.

부산저축은행의 영업정지 방침 누출과 이에 따른 ‘부정 인출’에 대해서도 검찰은 금감원을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금감원 및 그 상부 기관인 금융위원회(금융위) 간부들이 주도한 1월25일의 ‘저축은행 구조조정 태스크포스’ 회의를 수사 중이다. 이 회의에 참석한 인물 중에는 권혁세 금감원장(당시 금융위 부위원장)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번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태에서도 금감원 출신 감사가 적극적 역할을 맡은 혐의를 받고 있다. 금감원 직원들은 현직일 때는 ‘금융 권력의 체현자’로, 퇴직 후에는 금융기관 감사로 들어가 사실상 해당 금융사와 금감원 간 로비스트 노릇을 해왔다. 눈덩이처럼 사태가 커지자, 금감원은 5월4일 ‘앞으로는 직원들을 금융기관 감사로 보내지 않겠다’는 쇄신안을 발표했다. 민간 금융기관 감사로 내정됐던 금감원 관련 인사들도 줄줄이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타락하는데, 이미 자정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난 것이다.

금감원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된 이유는 기본적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이 사회 유지에 매우 중요한 기능이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종류의 기업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광범위하다. 저축은행처럼 작은 금융기관이라도 일단 무너지면 채권-채무의 끝없는 사슬을 타고 그 파장이 국민경제 전체로 퍼질 수 있다.

금융위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권력기관


예 컨대, 은행이 지나치게 위험한 투자를 하거나 너무 많은 부채를 쌓거나 혹은 경영진의 친분 때문에 부실기업에 대규모 대출을 허용하면 예금자들에게 돈을 돌려줄 수 없는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 금융투자사가 부실기업을 튼실한 기업인 것처럼 꾸며 주식을 발행해주면 이에 쌈짓돈을 부은 투자자들을 울리게 된다. 그래서 어느 나라나 금융기관을 규제하는 정책과 법규가 있고, 이를 담당하는 공적 금융 감독기관이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금융위원회와 그 집행기관인 금감원이 그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을 방문해 금감원 감독 부실을 질책했다.  ⓒ청와대 제공

금 융위원회는 2008년 이명박 정부의 금융감독 체계 개편으로 탄생했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총괄하는 최고 의결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에서부터 과도한 권력 집중이 나타난다. 금융위원회라는 하나의 기관이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겸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집권 세력은 통화량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고 싶어한다. 선거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융정책은 금융기관의 영업(예컨대 대출) 확장에 너그러운 쪽으로 기울기 쉽다. 이에 비해 금융감독 측면에서는 금융기관이 예금 규모나 부채에 비해 지나친 대출을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은 이처럼 상반된 목표를 지향할 수 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는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각각 다른 기관에 맡겨 서로 견제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의 금융위원회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힘든 권력기관인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이런 금융위원회의 하부 집행기관이라 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위원장의 재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또한 금융위는 금감원의 업무를 지도·감독하고 명령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처럼 밖에서 볼 때는 금융위와 금감원이 별개의 조직인 듯하지만, 사실 두 조직은 동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왔다. 금감원(금융위)은 국내 모든 금융기관에 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거나, 필요할 때는 상시적으로 ‘단독 검사’에 돌입할 수 있다. 금융기관에 대한 모든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금감원(금융위) 외에도 금융기관에 자료를 요청하거나 검사할 자격이 부여된 다른 기관이 있기는 하다. 한국은행과 예금보험공사(예보)다. 한국은행은 이른바 통화 금융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기관일 뿐 아니라 비상시에는 금융기관에 긴급자금을 빌려주기도 한다. 대출이나 채권 발행으로 통화량에 영향을 미치는 금융기관에 한국은행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해외에서는 중앙은행이 금융감독권을 총괄하는 경우도 많다. 예보도 마찬가지다. 금융기관이 영업정지를 당하는 등 유사시에는 고객들의 예금을 대신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두 기관에도 금융기관에 대한 자료 요청 및 검사 자격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 혁신 태스크포스(TF) 공동팀장인 임채민 국무총리실장이 활동 방향 등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그 런데도 금감원(금융위)이 ‘금융감독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고 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선, 한국은행은 금감원(금융위)처럼 단독으로 금융기관을 검사할 수는 없다. 금감원에 요구해서 함께 조사해야 한다(공동조사권). 그런데 여기에는 상당한 절차와 시간이 필요하다. 더욱이 법률적으로 금감원은 한은의 공동 조사 요구에 반드시 응해야 하는데도 현실적으로는 무시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한국은행은 금융기관에 자료를 요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상적 검사권이 없는 한국은행에 금융기관이 내놓는 자료는 매우 피상적이다. 금감원은 세세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으나, 이를 한은과 공유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를 웅변적으로 알려주는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바로 부산저축은행 사태다. 정보는 권력이다. 그리고 권력자는 자신의 힘을 타인(타 기관)과 공유하려 들지 않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구조의 배후에는 옛 재무부 인맥으로 기획재정부·금융위·금감원 등 ‘경제 권부’를 틀어쥐고 있는 이른바 ‘모피아’ 집단이 존재한다.

금감원 권한 분산하면 ‘시어머니’만 늘어

이 같은 금감원(금융위)의 권력 독점을 분산시키기 위한 개혁 대안이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여러 번 제출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는 2008년 7월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한국은행법 개정안이 있다. 한국은행도 금융기관을 단독으로 검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박 의원은 이미 2008년 당시 금감원이 저축은행 부실을 은폐한다며, 한국은행이 저축은행의 자료 제출도 요구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제안은 모피아와 한나라당에 밀려 실현되지 못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 이후에는 오는 6월 국회에서 처리하자는 의견이 세를 얻고 있지만, 김석동 금융위원장 등이 강하게 반발하는 형국이다. 박영선 의원실은 지난 5월8일 낸 보도 자료에서 “검찰은 저축은행 부실을 은폐한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에 대한 직무유기 등의 문제는 묻지 않았다. 저축은행 부실을 은폐해온 금융당국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금융감독 겸임을 해체하라는 주장도 있다. 5월12일 한국금융연구원 주최 세미나에서 원승연 교수(명지대)는 정책 기능과 감독 기능의 분리를 주장했다. 이번 저축은행 사태의 근본 원인이, 금융정책(경기 활성화) 때문에 금융감독을 희생시킨 데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해이한 감독에서 비리가 싹텄을 수 있다.

그러나 권한을 분산한다고 해서 금융감독 당국에 대한 불신이 해소될까. 기사의 서두에 언급한 은행원 이씨는 이와 관련된 기자의 질문에 “은행 처지에서는 ‘시어머니’가 많아질 뿐이다”라고 단언했다. 한국은행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국 속어에서 ‘시어머니’란 용어는 능력도 없으면서 사적 이익이나 권위를 위해 며느리의 트집을 잡는 존재를 가리킨다. 피감기관이 감독기관을 이런 존재로 보게 된 것, 즉 감독기관에 대한 신뢰도 저하야말로 금감원(금융위)과 그 배후의 모피아 세력이 금융 시스템에 저지른 가장 큰 폐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