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3&artid=201105251721281
참여정부 정책이 그리운 시대
2011 05/31ㅣ주간경향 927호
지역균형발전·대북정책·참여 민주주의 등 새삼 주목받아
‘모 든 게 노무현 탓’이라는 말이 떠돌던 때가 있었다. 참여정부의 3대 국정목표인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는 비난의 대상이 됐다. 참여정부의 핵심 정책은 그렇게 사라지는 것 같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으로 참여정부의 정책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모든 게 노무현 탓”은 이제 “노무현의 정책이 좋았다”는 말로 바뀌고 있다.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을 마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웅하면서 함께 손을 들어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경향신문
수도권 중심 vs 지역균형발전론
LH 공사 본사 진주 이전 결정, 국제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결정 결과를 둘러싸고 지자체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을 시작으로 이명박 정부의 지역 관련 정책이 정치적으로 결정된다는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세종시 수정안 꼼수를 부리다 부결되니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오기를 부리고, 수개월 동안 전국을 들쑤셔놓고, 도지사 몇 사람 삭발하게 하고, 이렇게 갈등만 부추기는 정부의 신뢰는 땅 밑으로 떨어졌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을 통해 지역이 아닌 수도권 위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참여정부는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중시한 정부로 재조명받는다.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구성됐고, ‘국가균형발전 특별법’도 만들면서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을 추진했고, ‘공공기관 지방이전 신수도권 기본방향’도 발표했다. 10개의 혁신도시 선정은 지역균형발전을 지속하겠다는 의지였다. 한국해양연구원·한국자산관리공사 등 13개 기관은 부산으로, 한국토지공사·농업과학기술원 등 14개 기관은 전북으로 이전하는 등 혁신도시에 176개 정부기관을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지역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지방재원 지원도 확대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론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균형발전 지역 선정 및 지원에서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국책사업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지역 갈등이 불거졌다. 강현수 중부대 교수(도시행정학과)는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있지만, 참여정부보다 더욱 개발지상주의적인 퇴행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비핵개방 3000 vs 화해와 협력의 대북 정책
5 월 9일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하고 천안함·연평도 사태에 대해 사과한다면 내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청하겠다는 ‘베를린 선언’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가 되도록 지원한다)과 궤를 같이 한다. 북한의 태도가 먼저 변해야만 지원과 협력을 하겠다는 의지다. 북을 압박해서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남북 사이의 긴장감만 높아지고 있다. 특히 화약고처럼 위태로운 서해안 문제에 대해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10·4 선언에서 ‘서해평화특별지대’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모든 것이 무효가 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참 여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주도하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촉진하는 것을 국정목표로 삼았다. <참여정부 국정운영백서>(2008)를 살펴보면 한번 중단하면 재개하기 어려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 남북경협 사업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정국에서도 계속 진행됐다. 참여정부는 남북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기조를 유지했다.
참여정부 시절 대북정책의 큰 위기는 북한의 핵보유 선언이었다. 2005년 2월 북한은 ‘핵보유’를 천명하고 ‘6자회담 참가 무기한 중단’을 선언했다. 참여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대북 불공격 약속을 재확인하려는 노력을 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제4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북핵 폐기와 안전보장’ ‘관계 정상화’ ‘동북아 안정과 평화 방안’을 담은 ‘9·19 공동성명’이 채택될 수 있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고,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인 ‘10·4선언’이 발표된 것은 끈기 있는 화해와 협력의 대북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 희정 충남지사는 “이명박 정부와 참여정부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가 대북평화노선이다. 이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6·15 선언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4 선언을 계승했어야 한다”면서 “대북 평화노선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는데, 그게 안 됐다”고 지적했다.
퇴행적 민주주의 vs 참여 민주주의
2007년 대선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호는 큰 힘을 발휘했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10년을 무의미한 시간으로 규정했다. 대신 이명박 정부는 ‘선진화’ ‘공정사회’ ‘법치’ ‘실용’ 등의 구호로 우리 사회를 보수적으로 재편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시작으로 KBS, MBC 사장 교체로 정부에 우호적인 언론환경을 조성했다. 올 하반기부터 선 보이게 될 종합편성채널은 보수적 언론이 방송을 장악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직권상정과 날치기 통과로 대표되는 여대야소의 국회는 대화와 타협이 아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 됐다.
이명박 정부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4대강 사업,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한·미 FTA 체결 등 사회적인 논란에 반대 목소리는 고려되지 않았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시민사회단체는 지원금을 무기로 길들이기를 시도했다. 민간인 사찰,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간첩 사건 등 민주정부 10년 동안 희미해졌던 단어들이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3년은 민주주의 퇴행의 시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참여정부는 국민이 국정과정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는 것을 국정 목표로 삼았다. 2007년 6월 10일 노 전 대통령은 6·10민주항쟁 20주년 기념식에서 “주권자의 참여가 민주주의의 수준을 결정할 것이다”면서 “나아가 시민 스스로 지도자가 되는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시민이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라고 역설했다.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의지가 실려 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노력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실패는 새로운 정당정치의 제도화를 이뤄내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다. 노사모와 같은 참여의 흐름이 정치인 개인 지지에 머물렀던 것도 정치 개혁 실패의 원인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지역주의에 기초한 정치 갈등을 새로운 갈등으로 대체할 수 있는 시민적 요구가 있었고, 2004년 열린우리당의 부상이 기회였다”면서 “하지만 정당정치에 대한 외면, 인터넷을 통한 대중 참여에 의존, 정치개혁에 대한 이상주의적 접근 등이 제도적 차원으로 확립되기 어려운 요인이 됐다. 정당정치 실패는 결국 노무현의 정치 실험의 실패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