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yangjungchul.com/174
또 봉하로 가는 김제동을 추억하며
2011/05/21 06:16 양정철닷컴
[시시비비 8년의 기록] 오늘 저녁 7시 서울(서울광장)과 봉하(노무현 대통령 묘역 옆)에선, 노 대통령 2주기 추모문화제가 각각 열립니다. 특히 봉하에서 열리는 문화제는 좀 특별한 자리입니다. 각종 지상파 방송에서 밀려나 시민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 현장공연을 시작했던 김제동의 토크콘서트를 아실 겁니다. 지난 해에 이어 올해에도 계속됐던 김제동의 토크콘서트 시즌2를 성황리에 마치고 그 피날레 공연을 봉하에서 무료로 갖는 것입니다.
재작년 노 대통령 서거 후 노제와 작년 1주기 추도식 사회를 본 것이 화근이 돼 방송에서 각종 불이익을 당해야 했던 김제동씨가, 토크콘서트 피날레 공연을 봉하에서 하는 깊은 뜻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특별한 캐릭터입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연예인이지만, 그는 우리 사회가 당면해 있는 문제들을 결코 회피하지 않는 이른바 소셜 엔터테이너입니다. 최근 그는 자살사태가 속출하고 있는 쌍용차 노조원 해고자 가족들을 위로하는 무대에 기꺼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수 많은 핍박과 불이익을 당했던 경험에서, 그런 결단은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소박한 신념을 버릴 줄 모릅니다. 그의 신념은, 대단한 이념이나 정치적 목적이 아닙니다. 그저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한 가닥 희망과 웃음을 선사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는 공동체 의식입니다.
아래 글은, 그가 노 대통령 1주기 추도식장에서 보여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에 아파하며 쓴 저의 글입니다. 아름다운 사람, 김제동. 오늘, 봉하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습니다.
김제동의 눈물
2010년6월1일<오마이뉴스>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추도식 날, 못 볼 걸 보고 말았습니다.
장대비가 쏟아 붓듯 내리는 봉하의 추도식장. 식이 시작되기 직전, 사회를 보기 위해 무대 뒤 천막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제동씨를 만났습니다. 몇 달 만의 조우였습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반갑게 포옹을 했습니다. 잠시 뒤 그가 흐느끼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서로 안은 채, 함께 울었습니다. 둘이 그렇게 한 동안을 있었습니다. 눈물을 닦으라고 손수건을 건넸습니다. 오열 때문에 그의 눈이 많이 충혈돼 있었습니다.
잘 참고 있었는데 나를 보니 울컥했다며, 그가 겨우 마음을 수습하고 쑥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그리곤 무대 위로 올라가 퍼붓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추도식을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차라리 안 봤으면 좋았을 걸…. 그의 처연한 눈물도 안 봤으면 좋았고, 추도식 사회도 그냥 안 봤으면 좋았을 텐데, 일이 이리 돼 버렸습니다.
"프로그램 안 하면 안 했지, 추도식 사회 안 볼 순 없다"
방송인 김제동씨가 또 잘렸습니다.
KBS, MBC 등 지상파에서 이유 없이 밀려난 게 몇 달 전입니다. 한 케이블 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이 걸린 야심찬 프로그램이 준비된다고 들었고, 톱 가수 '비'와 녹화까지 마쳤다는 보도를 봤는데, 노 대통령 추도식을 몇 주 앞두고 이상한 얘기가 들려왔습니다.
추모 콘서트를 한창 준비하던 상황에서, 연출자인 탁현민 교수가 그 얘길 제게 전해줬습니다. 해당 방송사 측에서 추도식 사회를 안 보면 안 되겠냐는 뜻을 전해 왔고, 김제동씨는 "프로그램을 안 하면 안 했지, 추도식 사회를 안 볼 순 없다"는 본인의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는 얘기였습니다.
김제동씨가 노 전 대통령 영결식 노제 사회를 본 이후 지상파 방송에서 퇴출당한 것이 괜히 우리 때문인 것 같아 못내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런데 또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그가 국민장 노제 사회를 수락해 준 것도, 1주기 추도식 사회를 수락한 것도 어떤 정치적 이유나 배경 없이 '인간적 선택'이었음을 알고 있었기에 존중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핍박을 또 받게 만들었으니, 면목이 없게 됐습니다.
저희 때문에 퇴출된 것 같아 미안합니다.
화가 나는 건, 우리가 견디지 못하는 미안함과 분노를 정작 본인은 너무도 담담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KBS <스타 골든벨>에서 하차를 통보받은 날, 노무현재단 출범기념 콘서트장 출연자 대기실에서 만났을 때에도 그는 저의 위로를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명색이 청와대에서 방송담당 비서관을 4년이나 한 제가, 방송사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라 국가기관이 치졸하게 개입한 정치적 정황까지 이미 알고 있는데도, 그는 "다 제가 부족한 탓"이라며 "하늘이 저 스스로를 돌아보고 충전할 좋은 기회를 주신 걸로 받아들인다"고 말해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추도식이 끝 난 후 권양숙 여사와 유족, 문재인 상임이사 등 재단 임원들이 갖고 있는 미안함과 걱정을 제가 대신 전하자 그는 같은 얘길 했습니다.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다 저의 결정이고 저의 선택입니다. 전 괜찮습니다. 그런 걱정이나 미안해하는 시선이 오히려 부담입니다. 전 지금 행복하고, 국민들에게 충분히, 아니 과분하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고, 전 아주 좋습니다. 아무 걱정 마세요."
그의 말이 빈 말이 아니요, 누굴 위로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 아님을 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가 그런 말을 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황을 혼자 감내했고, 얼마나 숱한 마음고생을 홀로 외롭게 극복해 냈는지 또한 잘 압니다.
김제동의 흐느낌을 그의 등에서 느낀 그 날 저도 울음이 터져 나온 건, 긴 시간 그가 혼자 감당했을 긴 고통과 사색과 번뇌의 시간이 떠올라서였습니다. 그가 왜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권력이 보여야 할 눈물, 김제동이 대신 흘리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게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생전이든 서거 후든 그는 노 대통령으로부터 신세 진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덕 본 것도 없습니다. 노제든 추도식이든 어려운 요청을 선뜻 수락한 것은 오로지, 그의 어머니와 노 대통령의 작은 인연이 전부입니다.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극히 사소한 인연. 그냥 잊어버리고 무시해도 될 인연. 그 인연을 그는 오래도록 잊지 못하고 있었고,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로 어려운 부탁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이리 혹독합니다.
김제동 보다는 노무현 대통령과 훨씬 깊은 인연, 아니 충분히 신세지고 덕 본 현재 권력 주변의 사람들이 '나는 노무현을 잘 모른다'고 부인하고 오히려 등을 지는 세태에서 그의 눈물이 아름답고 그의 마음이 소중하게 와 닿는 대목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 비극은, 그가 웃겨야 할 국민을 권력이 대신 웃기고 있고, 권력이 보여야 할 눈물을 김제동이 대신 흘리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