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선] 홍국영은 '스스로' 은퇴했다.

civ2 2008. 8. 22. 19:22
출처 : http://entertainforus.tistory.com/70


홍국영은 '스스로' 은퇴했다.


이번 주 내로 [이산] 의 홍국영의 '최후' 가 다뤄질 모양이다. [이산] 의 흥행 1등 공신으로 '홍국영 어록' 까지 만들어냈던 홍국영의 최후는 [이산] 이 내세우고 있는 흥행 카드 중 하나로 시청자들의 기대를 받아왔다. 6일자 [이산] 에서는 정조가 옥 안에 갇혀있는 홍국영과 옛 정을 나누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다뤄졌는데 과연 실제 역사 속에서도 그러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다.




정조 3년, 9월 26일. 조정에 한 통의 퇴직 상소가 날라든다. "신이 대궐문에 나서 다시 한 번 세상에 뜻을 둔다면 하늘의 신이 저를 반드시 죄 줄 것으로 압니다." 라고 쓰여져 있는, 다소 과격하기까지 한 퇴직 상소는 바로 정조의 최측근이라고 알려졌던 숙위대장 홍국영의 상소였다. 그의 나이 32살, 게다가 노소론을 막론하고 당대 최고의 권신으로 군림하고 있던 그의 퇴직 상소는 조정을 엄청난 파국으로 몰아 넣었다.


홍국영의 '퇴진 소식' 이 알려지자 뭇 대신과 신하가 정조를 알현해 말하기를 "홍국영의 나이가 젊고 공이 많은데도 스스로 물러나려 하는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원컨대 만류하소서." 라고 하였고, 삼사의 관원들이 동시에 들고 일어나 홍국영을 비호하며 그의 퇴진을 말리는 상소를 빗발치듯 올려댔다. 그야말로 조정은 벌집 쑤셔 놓은 듯 난리 법석이었고 오히려 지금까지 홍국영의 공을 높이사 벼슬을 높이자는 의견까지도 나오는 상황이었다.


정신 없이 떠들어 대는 조정 대신들과 삼사 관원들 속에서 오로지 평온했던 것은 바로 홍국영의 운명 공동체였던 '정조' 자신 뿐이었다. 정조는 9월 26일, 그와 홍국영이 처음 만났던 날과 같은 날짜인 이 때에 홍국영의 '퇴직 상소' 를 바로 가납했다. 홍국영의 퇴직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받아들이는 정조의 선택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파격 중의 파격이었다.


그러나 정조의 파격적인 선택에 '멍' 해졌던 대신들과 관원과 달리 정조는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정조는 홍국영을 일컬어 "이전과 이 후, 천년에 걸쳐 이와 같은 군주와 신하의 만남이 언제 있었고, 언데 또 다시 있을 수 있겠는가. 옛날부터 흑발의 재상은 있었지만 흑발의 봉조하는 없었는데 국영으로 하여금 드디어 흑발의 봉조하도 있게 되었다." 라는 말과 함께 홍국영에게 '허울 뿐인 벼슬' 이었던 봉조하라는 직위를 내리는 한편, 그의 권력기관 중 하나였던 숙위소까지 폐쇄함으로써 홍국영을 완벽하게 조정에서 배제해 버렸다. 불과 하루만에 펼쳐진 '대 반전' 이었다.


홍국영은 '스스로' 물러나는 형태를 취해 정조와 이별을 고했지만 그 배후에는 정조의 압력과 협박이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다. 그 당시 정조는 자신의 후사까지 좌지우지 하려는 홍국영의 '권력' 을 제거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운명에 도달해 있었다. 정조는 원빈 사건 이후로 노골적인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던 홍국영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본격적인 '정조의 시대' 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끝내 정조에게 남아있던 카드는 홍국영을 '제거' 해 버리는 것 뿐이었다.


정조는 홍국영과 그 무리들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일을 크게 만들며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그를 정계의 중심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게 만들었다. "다시 한 번 대궐 안에 들어온다면 하늘이 벌 주리라." 는 홍국영의 퇴직 상소는 엄밀히 말하자면 홍국영의 생각이 아니라 정조의 생각이었던 셈이다.


홍국영은 그렇게 '모양새 좋은' 모습으로 '스스로' 정계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 배후에 정조가 있었다면 홍국영의 최후는 뻔한 것이었다. 정조는 홍국영을 물러나게 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의 백부인 홍락순까지 조정에서 쫒아내는 것으로 불과 3개월만에 홍국영의 세력들을 모조리 조정에서 쫒아냈다. 정조가 임금으로 올라서는데 가장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킹 메이커' 홍국영에 대한 처분치고는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의 엄한 처벌이었다.


홍국영은 스스로 물러날 때만 해도 조정의 세력을 일으켜 금세 조정으로 복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홍국영의 기대와 달리 정조는 너무나도 '기다렸다는 듯' 홍국영의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으로 홍국영이 그나마 기대고 있던 재기의 발판을 완전히 짓밟아 버렸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정조는 홍국영이 다시는 도성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가산까지 몰수해 그를 파탄지경으로 몰고 갔다. 홍국영이 36살 젊은 나이에 화병으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정조의 노골적인 핍박과 협박, 그리고 암묵적으로 '죽음' 으로 몰고간 냉철한 처벌에 있었다.


드라마 [이산] 속 홍국영은 모진 고문으로 옥에 갇혔음에도 정조와 만나 옛 정을 되새기며 눈물을 흘릴 시간 정도는 있었지만 실제 역사 속 홍국영은 궐 밖을 나간 뒤 단 한 번도 정조를 만나지 못했다. 정조는 그에게 참회할 기회도, 용서 받을 기회도, 더 나아가 재기할 기회도 허락치 않았다. 정조가 그에게 베풀었던 마지막 은전은 홍국영 '스스로' 물러나는 모양새, 딱 그 뿐이었다.


'정조의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 로 시작해 '정조대 가장 사악한 권신' 으로 변모했던 홍국영의 최후는 이렇게 비참했다. 그를 제거할 수 밖에 없었던 정조의 운명도, 그에게 버림받을 수 밖에 없었던 홍국영의 운명도 어쩌면 '권력' 이라는 두 글자에 비정할 수 밖에 없는 비극의 역사가 아니었을까. 아마 홍국영을 쫒아내던 그 순간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당부를 되새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홍국영의 아비 홍락춘은 약간 미친 광인으로 그 아비가 자식 교육을 제대로 시켰겠습니까. 지금은 충심으로 가장하고 있으나 본시 그 못된 마음이 도질 것이니 필히 경계하셔야 할 것입니다."


정조의 시대는 그렇게 '홍국영' 을 넘어서는 것으로 흘러가고 있었다.